매우 길거나 짧은? 달콤한 인생?

매우 길거나 짧은? 달콤한 인생?

손성진 SOMA 큐레이터

현대사회에서 예술가는 어떤 의미일까?
자본주의적 시장경제의 시각으로 바라 볼 때, 전혀 합리적이지 않고 비논리적인 예술가의 시각을 어떻게 이해하고 판단할 것인가? 그리하여 궁극적으로 우리 사회에서 진정한 예술가의 정체성과 지위를 자리매김 할 수 있을까?
이번, 이창훈의 작품을 설명하기 전에 서론을 풀어가기 위한 화두로 스스로 몇 가지 질문을 던져 봤다. 너무도 당연한 얘기지만, 예술가의 존재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 되지 않기위해서 라도 예술가의 존재, 예술가로 생각 한다는 것의 궁금증을 이창훈의 작품을 통해 알아가는 재미를 공유하고 싶다.
일상생활 속에서 만나게 되는 수많은 사람들의 생각을 엿볼 수 있고 예측할 수 있다면, 어떨까? 그것도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같은 예술가들의 사고방식을 들여다보는 묘미는 짜릿 하다. 여기 이창훈의 작품도 최초 모티브를 얻게 된 동기와 제작과정, 작품연출 마무리까지….전 과정에서 보여지는 독창적인 동기부여와 창의적인 제작과정, 가볍지 않은 주제의식까지 지켜보는 내내 미소 짓게 만들었다. 컨셉츄얼 아트(Conceptual Art)가 이렇게 재미있다는 게 믿기 어려울 정도로 전 과정 자체가 작품의 특징을 말해주는데, 지금부터 일관성 있는 주제의식에 다양한 소재를 이창훈식 사고틀에 버무려서 제작되는 작품들을 소개하도록 하겠다.

첫 번째, 소개할 작품은 “1 Frame – 삶과 죽음, 인생은 아름다워, 스틸 라이프, 삶의 의미, 아버지의 인생, 나의 장미 빛 인생, 희몽 인생, 인생, 오하루의 일생”이란, 긴 제목의 영상작품이다. 인생을 테마로 하는 여러 나라(9개국)의 영화 9편을 상영한다. 상영은 평범한 방식이 아닌, 예술가의 방식이 도입된다.
영화는 보편적으로 1초에 29프레임 정도가 사용되며, 영화 한편이 대략 90~95분의 런닝타임이 소요되는 것을 볼 때, 총 156,600프레임 이상이 소요된다고 한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 우리가 감상하는 화면은 희미한 영상에 아주 미세한 움직임 정도만 감지할 수 있다. 흔히, 영화 한편을 인생에 비유하곤 한다. 작가가 인생이란 이름으로 9편의 영화를 아홉 화면에 압축시켜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인생은 진실과 거짓, 슬픔과 기쁨, 성공과 좌절도 지나고 나면, 큰 차이가 없음을 은유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제목처럼 매우 길지만 때론, 짧을 수도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말하고자 하는지도 모르겠다. 이렇듯, 인생에 관한 단상을 자신의 촉이 반응하는 소재에 따라 작업이 진행되며 소통하지 못하는 개인과 사회에 대한 소통을 시도하려는 노력이 다양한 매체로 시도된다.
그 두 번째 시도로 전시 제목이기도한 “매우 길거나 짧은”이란 음향작품을 소개한다.
LP판의 한 면이 돌아가는데, 대략 25~30분 정도가 소요된다. 이 작품의 진행 방식은, 베토벤 5번 교향곡(운명)이 수록된 곡을 하루(24시간)가 지나야 종료되게 늘려 놓았다. 길어야 30분인 음악 감상 시간을 24시간으로 길게 만든 의도는 또 무엇일까? 앞의 작품에 대한 역지사지의 심정이 아닐지 모르겠다. 살면서 끔찍하게 길게 느껴졌던 순간을 경험한 이들은 쉽게 공감할 것이다.
세 번째, 작품의 제목은 “Lost One’s Way-Sweet Story”이다. 작품소재는 도로에서 볼 수 있는 이정표인데, 지정된 장소에서 정해진 곳을 가리키는 용도인 이 물체를 생경한 미술관 공간에 설치하여 사회 속에서 표류하는 개인을 상징하고, 사회와 개인 간에 겪는 가치관과 규범의 대립, 더 나아가 현실과 이상 사이의 불투명한 삶의 미래를 동시에 은유하고 있다.
네 번째, 작품은, 미술관 건물 옥상에 “PARADISE”라는 LED 입간판을 설치하고, 낮에는 파라다이스가 확연히 드러나지만, 밤이 되면, ‘D, I, E’라는 단어가 보이지 않아 “PARA S”라는 말로 읽히게 된다. 파라다이스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이상세계임을 감안 할 때, 무수히 많은 낮과 밤이 모여 인생을 이루고, 현실과 이상의 괴리감과 낮에는 있고 밤에는 사라지는 신기루 같은 소중한 그 무엇. 그런, 인생의 양면성과 모호함을 상징한다.
마지막 작품 “CV”는, curriculum vitae의 약어로 ‘이력’이란 뜻이다. 작가는 미술계에서 활동했던 경력사항을 한 줄로 겹쳐서 서술한다. 시작부분은 년도 표기라서 희미하게나마 알 수 있지만, 중간부분은 수많은 경력들이 쌓여 검게 표기되어 있다. 마지막 부분에 가서야 작가가 독일의 이름 모를 도시에서 전시활동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 밖에는  정보가 없다.

검고 길게 표기된 이력처럼 우리의 인생은, 어쩌면 어두운 터널의 연속일지도 모르겠다. 과거 냉전시대와 흑백논리가 지배하던 사회보다 진일보된 세상을 살고 있지만, 다양한 가치가 존중되고, 절대 악과 선이 무의미하며 양면성과 모호함이 지배하는  현대사회를 살면서 작가의 의문과 문제제기에 깊은 공감을 느낀다. 그리고, 그가 예술가로서 단절된 개인과 사회에 대해 소통하려는 노력과 방식을 응원하고자 한다.
혹, 아는가? 그 노력이 빙하기 인류멸망이라는 어두운 터널을 뚫고 지나가는 설국열차의 멈추지 않는 엔진 같은 것을 만들어 낼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