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워내기를 통한 드러내기

비워내기를 통한 드러내기

경기창작센터 학예연구사 김현정

작가 이창훈을 만나게 된 건 그의 작품을 먼저 접하고도 한참 시간이 흐른 이후였다. 그의 작업을 구체적으로 직접 듣게 된 것 역시 가장 최근에 일어난 일인데다가 이번 경기창작센터에서 개막을 앞두고 있는 전시는 흥미롭게도 사전에 작품에 관련된 대화를 나누고 상상력을 가미하여 전시개막 이전에 작성하게 되었다. 경기창작센터에서 지난 10월 17일-19일 진행되었던 오픈 스튜디오 행사에서 이창훈은 목재를 재료로 입주작가들 혹은 방문객들이 가장 뚜렷하게 볼 수 있는 야외 데크에 이 거대한 ‘이주와 정주를 위한 불안한 모뉴먼트’ 를 설치하였다. 물론 이 작품은 현재까지도 선감도에 그 자리를 지키고 있으며 이창훈은 곧 다시 화이트큐브의 전시공간에서 어쩌면 동일한 맥락이 닿아 있다고도 할 수 있는 작품을 전시함과 동시에 퍼포먼스를 진행하게 될 예정이다. 그의 작업은 가장 개인적인 경험과 체험으로부터 시작하여 그가 표현한 “길 위에서 길을 잃다”는 이번에 공개하게 되는 신작에서도 그 궤를 같이 하고 있는 듯 하다. 수없이 작가들은 창작공간을 지원하여 작업실을 제공받고 그 곳에서 교류하며 개인의 작업을 진행해 가지만 또다시 정주의 기간이 지나면 이주를 위한 고민과 더불어 새로운 작업의 계기를 만나기도 하고 기존작업을 연결시킬 수 있는 영감을 얻기도 한다. 이러한 불안감을 다양한 매체를 통해 이야기하고 있는 작가는 이번 전시를 통하여 끝을 알지 못한 채 무한히 반복되는, 전시장을 다시 흰색으로 칠하는 행위를 일주일간 실행함으로써 또한 연약한 나무라는 재료를 사용하여 거꾸로 세워진 불안한 집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이 신작들을 통해서도 그의 이를 테면 ‘비워내기’, ‘덜어내기’, ‘제거하기’, ‘지우기’ 는 계속된다. 이 없어지고 의도적으로 사라지게 만든 틈 사이에서 작가가 고민하는 아슬아슬함, 작업이란, 예술의 가치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 등을 보는 이로 하여금 사유하게 만든다. 역설적으로 나는 이창훈의 ‘길 위에서 길을 잃다’ 라는 표현을 곱씹으며 그의 작업을 보면서 그의 작업을 통해 그의 방황과 표류, 소통의 단절 등을 외치며 작가로서 또한 사회의 시스템 안에 종속되어 살아가는 한 일원으로서의 조용한 외침에 귀를 기울여 보게 된다. 그 울림은 단절되어 있지 않고 지속적으로 이어져 왔다고 보여지며 그 비움을 통한 작업을 통하여 그는 더욱 그를 드러내어 왔다는 아이러니한 지점이 발견된다. 이번 이창훈의 신작은 경기창작센터에 입주해있었던 작가로서, 이주와 정주 그리고 회귀의 여정을 반복하는 행위로서, 그리고 도심에서 고립된 외딴 섬이라고 하는 대부도의 지역적, 장소 특정적 현장성이 개입된 작가의 삶 가운데에서의 외로움, 길을 잃었다기보다는 어쩌면 문득 어디로 향해 가야 할지 망설이는 지점에 서 있는 작가의 지금 현재를 고스란히 드러내 준다고 하는 면에서 소리 없이 묵직한 울림이 메아리로 전해져 온다고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