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S

■ Exhibition /
2018 예술정거장 프로젝트-언더그라운드 온 더 그라운드
2018 Art Station Project-Underground On the ground

인천시청역 1호선 역사 Incheon City Hall Station
2018_1213 – 2019_1003
주최 / 인천문화재단
주관 / 문화수리공
협력 / 인천교통공사_펠릭스 곤잘레스 토레즈 재단
후원 / 인천광역시_한국문화예술위원회

강용면_김구림_김승영_김용철_김원근_김유석_김창겸_박기진_박종영_배성미_설총식_성능경_육근병_윤진섭_이강소_이건용_이민수_이병찬_이승택_이재형_이종구_조권익_최은동_홍원석_황문정_펠릭스 곤잘레스 토레즈_피에르 파브르_러봇랩_언사이트(신형섭_이원호_이창훈)
* UNSITE는 신형섭, 이원호, 이창훈으로 구성된 아티스트 프로젝트 그룹이다.

지하철 역 한 공간에 뜨개질이라는 작업 공정을 통해 제작된 120 미터 길이의 둥근 띠가 역무실 지붕 위 기둥에 둘둘 말려서 아래로 흘러내린다. 마치 어느 항만에서 거친 작업이 끝난 후 두꺼운 밧줄을 기둥에 가지런히 정리해 둔 느낌이다. 두께 50 센티 안팎의 거대한 둥근 띠는 뜨개질 털실의 알록달록한 색채들로 구성되어 있다. 마치 어린이가 크레파스로 그린 그림처럼 소박하고 명랑하게 느껴진다. 기둥을 여러번 휘감고 바닥까지 흘러 내려와 있는 작품은 사람들이 직접 만질 수 있어 그 표면의 부드러운 촉감을 직접 느낄 수 있다. 작품에 쓰인 재료 뜨개질용 털실은 그 특유의 포근한 질감으로 지하철역이라는 공간에서 느껴지는 차가운 물성과는 사뭇 다른 느낌으로 다가와 친숙하면서도 신선한 느낌을 공간에 부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외관의 형태에서 느껴지는 거칠게 휘몰아치는 힘과 그를 구성하고 있는 재료의 부드러움과 따뜻함, 그리고 이를 잇는 한땀 한땀의 장시간의 노동이 서로를 더욱 강하게 끌어당겨 독특한 매력을 발산 시킬 것이다.

이 프로젝트에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여 만들어 내는 협업작업이라는 데 큰 의미가 있을 것이다. 직접 섭외한 뜨개질장인들과 인천에서 오랜 삶을 지탱해 오신 아주머니들이 뜨개질 작업에 참여한다. 작품의 외형에서 나타나는 비정형적인 무늬들은 뜨개질을 하는 참여자들이 직접 감각적으로 만들어 나가면서 하나의 긴 띠를 구축한다.

「One-Row Knitting」 is a work of art that makes use of the everydayness of the space of Incheon City Hall Station, and warms it up with a warm and cozy colorful fabric, while unfamiliarizing a familiar space. The work is completed by hours-long effort and the collaboration with the participation of many people. The piece invites the viewers to directly touch the work and feel its softn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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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olo Exhibition /
원을 베어버린 사선
The line cutting a circle

스페이스 XX SPACE XX
2018_0915 – 2018_1007

최근 나에게 있어 중요한 주제는 시(공)간이다. (시간과 공간은 늘 함께 할 수밖에 없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 이러한 주제는 ‘인생을 한마디로 말한다면 시간에 실려 가는 삶의 지속이다.’라는 정의에서 출발해 비시각적 일수 밖에 없는 시간을 가시화하고, 사유하는 과정을 통해 우리는 ‘삶’의 실체를 목격할 수 있으라는 생각에 기인한다.

한편 이러한 주제 설정은 이전 내가 선호했던 작업 방식, 즉 의미를 오역하거나 희석시킬 수 있는 불필요한 작업적 레이어를 최대한 걷어냄으로, 결국 주제의 본질에 닿으려는 방식과 결부되어 작업 스스로 관념적 세계의 차원에 머물게 하려는 경향이 없지 않았나? 자문케 하였다. 그리고 이에 대한 대안으로 현재는 작업적 모티브를 관념의 차원에서 구하기보다는 우리 주변에 일어나는, 또는 그 원인 되는 특정 사회현상이나 구체적 사건을 작업에 적극 차용하고자 한다. (물론 이를 피상적으로만 사용했을 때 오는 작업적 가벼움과 일시성 또한 작가로서 경계하고자 한다.) 즉 관념과 현실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 현실에 발을 디디고 시간과 공간, 그로부터 삶에 대한 사유까지 도달케 하려는 시각적 실험을 추구하고자 한다.

그리고 이러한 시(공)간이라는 비시각적 주제가 스스로를 드러내고, 목격되어지는 현실 공간으로 나는 재개발, 뉴타운 지역과 사회적 갈등 지역에 주목하고 있다. 이 지역이 주는 다양한 의미가 다양한 층위의 레이어로 작업의 모티브가 된다. 특히 여러 가지 사회적 논리가 얽히고설켜 그 시작과 함께 멈추어버린 곳. 개인적 욕망과 사회적 욕망이 극단으로 충돌하고, 그로인한 폭발, 거기서 발생한 에너지 같은 그 무엇들이 유령처럼 떠도는 곳. 모든 사적 시간들은 거대한 블랙홀에 가두어지고, 순리로서의 원형의 시간이 직선으로 가로 잘려 보이지 않던 머리와 꼬리가 생겨나고, 하나의 질량으로 목격되어지는 곳. 그 어느 현실의 장소보다 현실적인이지만 애써 거리두기로 변두리가 되어버린, 그래서 오히려 우리의 삶을 관망케 하는 곳. 무생물로 여겨지나, 태어나 자라고 늙어 죽어가길 반복하는 우리 내 삶과 다르지 않은 곳.

작업은 우리의 현실을 가장 극단적으로 반영하는 이곳 장소들에서 목격되어지는 비시각적 시간을 가시화하게 된다. 그리고 이 시간은 ‘인생을 한마디로 말한다면 시간에 실려 가는 삶의 지속이다.’라는 정의 하에 우리의 삶을 반영하며, 결국 우리의 삶은 이 사회 속에서 어떻게 관계하며 이어지고 있는가라는 현실적 질문에서, 삶에 대한 근원적 사유에 이를 여지의 시간을 타인들과 공유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I have forever been greatly interested in time-space. (time and space are as inseparable asthe head and tail of a coin.) My theme stems from a definition, “Life, in a word, is existence continuously drifting through time”. I want to visualize time, something that is naturally invisible. I have the freedom to speculate about what constitutes reality because time is immaterial.

This theme, however, made me ask myself if I was inclined to stay in an abstraction in order to reach the essence of the motif. I had preferred to edit out unnecessary elements for the sake of clarity in previous works. My new plan is to make use of social phenomena and real life events rather than to work abstractly.(Of course, as an artist, I take precaution against lightness or temporariness of work caused by superficially using them) I seek balance between the ideal and the actual. It is a visual experiment, based in the everyday that leads to an understanding of time and space and the nature of reality.

I take notice of actual places such as redevelopment zones and new town areas where social conflict occurs. This is where the theme of time and space shows its face and is witnessed. Various meanings these areas have motivate the work, which also has a variety of layers.

These places are where personal desires of community, family, and friends conflict with social desires of redevelopment and economic prosperity. In the wake of this conflict is some kind of energy that haunts like a ghost, where all of private time is confined to a huge black hole. Where time that is cyclical, as are the laws of nature, gets redirected into a straight line and we can glimpse the past, present, and future, like the head and tail of a coin all at once. In these places, too, are marginalized communities, cut off and disenfranchised with current socio-economics and which is regarded as non living yet has life. These communities are born, grow up, get old and die in succession just like us and our lives.

My work reveals these conflicts in the context of space-time. This time is a mirror of our lives as the definition ‘Life, in a word, is existence continuously drifting through time’. In short, I want record this time which begins with the question of how our lives are interrelated, interdependent, and continuous. Eventually traveling down to reach the root question about the meaning of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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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hibition /
비장소 non-place

주독일한국문화원 갤러리담담, 베를린, 독일 Korean Cultural Centre Germany Gallery damdam, Berlin, Germany
2018_1129 – 2019_0119
후원 주최 / 문화체육관광부_주독일 대한민국대사관 한국문화원

EunSook_Changhoon Lee_Wonho Lee_Minchul Song

장소란 역사가 새겨지고 관계가 만들어지며 정체성에 개입하는 곳이다. 오제(Marc Augé)가 개념화하는 비장소는 ‘유기적 사회성’을 빚어내는 전통적 장소의 기능을 더 이상 수행하지 않는 장소이다. 공항이나 호텔, 쇼핑몰의 늘 새 것인 듯 매끈한 공간, 즉 비공간에서 우리는 더 이상 시간의 무게를 느끼지 못하며 영원한 현재에 머무르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이와 같은 공간들은 쉽게 대체가 가능하기 때문에 우리는 그저 그곳을 통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비장소인 공간이라 할지라도 공간 내의 행위자들이 그 곳과 어떤 관계를 맺는가에 따라 다시 장소로 변할 수도 있는데 바로 이번 전시가 이런 비공간의 장소화이다.

송민철은 원형의 과녁을 이용해 각기 다른 원의 면적을 계산하여 재배열시킨다. 그리고 거울과 바둑판을 통해 존재하지만 경험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 전체를 이루는 방식, 명제를 바탕으로 만들어지는 가설을 전시장 공간을 활용해 시각적으로 환기시킨다. 이창훈은 달력을 관찰하여 깨달은 다른 차원의 시공간을 보여준다. 달력이 표기하는 시간과 촬영된 시간 사이가 진공의 틈이며 이는 관객이 감각의 차원에서 느낄 비시각적 시간의 질량이라고 규정한다. 이원호는 노숙자가 주로 거주하는 장소를 찾아다니며 종이박스로 집을 짓는 노숙자에게 가격을 물어보고 흥정을 통해 이를 구입한다. 여기에는 노숙자가 스스로의 집이 세워진 땅의 면적을 계산하고, 가치를 부여하여 돈으로 환산하는 과정을 통하는데 집이라는 것이 가지는 본연의 사회적 좌표를 지시한다. 은숙은 전통적인 공간에서 벗어나 유기적인 사회성이 사라진 현실을 보여준다. 이때 비공간은 거기에 접근할 수 있는 추상적인 범주 아래 제각기 호명되며 그 상징체계는 최소한의 공통 언어에 의존해 형식 속에서 일방적으로 부과된다. 이번 전시작가 4인은 이런 장소화 및 비장소화뿐만 아니라 장소투쟁의 개념을 이번 전시에 담았다. 관람객들은 주독일 한국문화원 갤러리 「담담」에서 작가들이 각자 고유한 방식으로 해석한 비장소의 개념과 생각을 그들의 작품을 통해 체험하게 될 것이다.

Ein Ort spiegelt seine Geschichte wider; Beziehungen werden dort geknüpft, und es fließt die Persönlichkeit seiner Bewohner ein. Der „Nicht-Ort“ (Englisch: non-place), wie er von Marc Augé definiert wurde, bezeichnet einen Raum, der nicht länger als anthropologischer Ort betrachtet werden kann. Der sterile Raum oder Nicht-Ort, der – wie ein Flughafen, ein Hotel oder eine Einkaufsmall – immer neu erscheint, lässt uns das Gewicht der Zeit vergessen und gibt uns das Gefühl, in einer ewigen Gegenwart zu verharren. Da solche Räume austauschbar sind, passieren wir sie meist achtlos. Aber auch solche Nicht-Orte lassen sich in Abhängigkeit von den Beziehungen, die die darin Agierenden mit ihnen knüpfen, in Orte verwandeln. In dieser Ausstellung geht es um die Transformation eines solchen Nicht-Ortes in einen O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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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hibition /
예술을 쓰다, 책을 그리다
Write an Art, Draw a Book

경북대학교 미술관 KNU Art Museum
2018_1121 – 2019_0129

고길숙_권도연_김선좌_박성연_성기완_윤기언_이지영_이창훈_임봉호_전주연_지희킴_하므음_혜순황_홍승희_APRILSNOW_DATZPRESS_MARTIANSTORY

본 전시는 책의 내용(contents), 형태(forms)가 해체되는 현상과 오늘날 책의 역할에 대한 논의에서 시작되었다. 책은 미술작품과 같이 자신이 말하고 싶은 바를 전달하는 동시에 시대와 소통하는 작가의 창의적인 행위의 결과물이자 각각의 고유한 문법과 언어를 지닌 ‘집약적인 작품’으로서 작가와 외부세계를 연결한다. 그리고 ‘집약적인 작품’으로서 작가와 외부세계를 연결하며, 실재를 재현하고 삶의 다양한 가치를 전달한다. 이것은 인간의 경험과 가치관에 의한 다양한 해석을 열어두고, 무한한 상상력을 펼치게 한다는 점에서도 유사하다.

이번 전시에서는 사전적 의미로서의 책이 아닌, 책을 수용하는 ‘방식’에 주목하며 예술 작품으로서 책의 의미를 재해석하고 제시한다. 전시에서는 듣기-읽기-쓰기-말하기의 4단계 언어습득과정을 차용하여 작품 해석의 도구로서 사용한다. 이 과정에서 순환구조를 지닌 소통의 4단계를 통하여 제시되는 작품들은 기존의 책이 가진 물리적인 틀과 사고에서 벗어나 이전과는 다른 의미와 형태를 보여준다.

1세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책은 오랫동안 인류와 함께 해왔다. 매체와 기술의 발달로 우리가 알던 기존의 책의 형태는 소멸할 수 있으나, 그 안에 담긴 콘텐츠의 가치는 영원하다. 책은 이제 물리적인 형태를 벗어던지며 예술로서의 가능성을 모색할 것이다. 이번 전시를 통해 책의 진정한 의미와 그 미래를 스스로 고찰해보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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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hibition /
낙원 – 스튜디오 화이트블럭 제4기 입주작가전
Paradise – The 4th Studio White Block Exhibition

아트센터 화이트블럭 Art Center White Block
2018_0728 – 2018_1014
후원 / 파주시

김건일_서정배_윤정선_이창훈

PARA(DI)S(E)

헤이리 예술마을에 위치한 아트센터 화이트 블럭(관장 이수문)을 찾았다. 헤이리 스튜디오 화이트 블럭 제4기 입주작가전을 방문하기 위해서였다. 헤이리 스튜디오 화이트 블럭은 지난 2009년 설립된 사립 레지던시로 총 4개의 스튜디오를 운영하고 있다.
그동안 1기부터 3기까지 헤이리 스튜디오 화이트 블럭을 거쳐 간 작가는 총12명이라고 한다. 그리고 작년 4월 입주해 현재 작업하고 있는 4기 입주작가들(김건일, 서정배, 윤정선, 이창훈)을 끝으로 헤이리 스튜디오 화이트 블럭은 문을 닫는단다.
물론 지난 5월 천안 스튜디오 화이트 블럭이 문을 열었다. 따라서 헤이리엔 ‘아트센터 화이트 블럭’이 그리고 천안엔 ‘스튜디오 화이트 블럭’이 운영되는 셈이다. 이번 스튜디오 화이트 블럭 4기 입주작가전에는 타이틀이 없었다.
하지만 4명의 입주작가들 전시들에는 각각 타이틀이 명명되었다. 김건일의 <풍경 속 풍경>, 윤정선의 <소풍 같은 날들>, 서정배의 <4월, 다시 4월>, 이창훈의 <낙원>이 그것이다. 아트센터 화이트 블록 강성은 큐레이터는 이번 전시에 대해 다음과 같이 진술했다.
“전시는 각 작가들의 작업을 독립된 하나의 전시로 구성했다. 스튜디오 화이트 블럭 제 4기 입주작가전이라는 타이틀 아래 각 작가별로 전시명을 정하고 독립된 전시장에 작품을 설치했다. 또한 1기부터 3기까지 스튜디오 화이트 블럭을 거쳐간 12명의 작가들 작품도 미술관 한 층에 설치해 놓았다.”
따라서 이번 스튜디오 화이트 블럭 4기 입주작가전은 4개의 독립된 개인전들로 이루어진 셈이다. 난 특별한 주제로 기획된 것이 아니라면 막연한 그룹전보다 색깔 있는 개인전을 선호한다. 그런 점에서 이번 아트센터 화이트 블럭의 개인전은 좋았다.
자, 전시를 방문해 보자. 난 아트센터 화이트 블럭의 1층에 있는 첫 전시실로 들어섰다. 그 전시장은 이창훈의 <낙원>으로 연출되어 있었다. 오잉? 전시장 한 가운데 거대한 도로 이정표가 누워져 있는 것이 아닌가. 종로2가와 안국동 사거리 그리고 을지로1가를 가리키는 도로 이정표는 아마도 종로1가에 설치되었던 것 같다.
종로1가에 설치되었던 도로 이정표가 헤이리 화이트 불럭 전시장에 이전되었다. 물론 그 도로 이정표는 여러 지역들을 이동했다. 전시장 바닥에 뉘어진 도로 이정표 옆에는 모니터 한 대가 놓여져 있다. 그 모니터는 영상을 상영하고 있다.
이창훈의 영상 ‘길을 잃다 – 달콤한 스토리(Lost One’s Way – Sweet Story)’(2011)는 도시의 도로 이정표를 때어 해안으로 옮기는 과정을 기록한 것이다. 그리고 그 도로 이정표는 2013년 소마미술관 드로잉센터로 옮겨졌다.
이제 그 도로 이정표는 헤이리 화이트 블럭 전시장에 이전되었다. 여러분도 어시다시피 도로 이정표는 정해진 장소에 있어야만 그 기능을 다한다. 따라서 도로 이정표가 특정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이동해 설치된다면 기능을 상실한다,
머시라? 이창훈의 ‘길을 잃다 – 달콤한 스토리’는 관객에게 무슨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한 것이냐고요? 이창훈의 육성을 직접 들어보자,
“정해진 곳에서 정해진 곳을 가리키던 이정표는 작업을 통해 사회 속에서 표류하는 개인을 상징하며, 사회와 그 안에서 생성된 규범 그리고, 가치관에 대한 개인의 대립과 나아가 현실과 이상 사이의 불확실한 삶의 여정을 동시에 은유한다.”
이제 감 잡으셨지요? 2000년 초반 이창훈은 국내 미대를 졸업하고 독일로 유학을 떠나 슈투트가르트 쿤스트아카데미에서 조소를 전공한다. 2009년 그는 대학원격인 마이스터슐러(Aufbaustudium) 과정을 졸업한다.
2010년 이창훈은 귀국해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에 입주한다. 2012년 경기창작센터, 2013년 천예술공장, 2014년 양창작스튜디오, 2015년 천아트플랫폼 그리고 현재 헤이리 스튜디오 화이트 블럭에 입주해 있다.
이런 단편적인 정보는 이창훈이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면서 작업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따라서 이창훈은 작업뿐만 아니라 작가 자신 역시 사회 속에서 표류하고 있는 셈이다. 그의 삶 자체가 ‘현실과 이상 사이의 불확실한 여정’이다.
이창훈의 ‘길을 잃다 – 달콤한 스토리’는 지나가면서 중얼거렸듯이 2013년 소마미술관에서 열린 개인전 <매우 길거나 짧은>에 전시되었다. 당시 그는 소마미술관 건물 옥상에 ‘PARADISE’라는 LED 입간판을 설치해 놓았다.
그런데 ‘파라다이스’는 밤만 되면 죽는다. 무슨 뚱딴지 같은 말이냐고요? 밤이 되면 LED 입간판 ‘PARADISE’에 불이 들어온다. 그런데 불이 모든 영어철자에 들어오지 않고 일부가 꺼져있는 것이 아닌가. 이를테면 ‘PARADISE’에서 ‘PARA.S’만 불이 들어오고 ‘DI.E’는 꺼져있다.

이제 감 잡으셨지요? 뭬야? 이창훈의 ‘PARA S’(2013)가 관객에게 무슨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한 것이냐고요? 그 질문에 대한 답변도 이창훈의 육성으로 대신하겠다,
“파라다이스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이상세계임을 감안 할 때, 무수히 많은 낮과 밤이 모여 인생을 이루고, 현실과 이상의 괴리감과 낮에는 있고 밤에는 사라지는 신기루 같은 소중한 그 무엇. 그런, 인생의 양면성과 모호함을 상징한다.”
‘접수’되셨죠? 난 지나가면서 그의 삶 자체가 ‘현실과 이상 사이의 불확실한 여정’이라고 중얼거렸다. 그런데 우리가 길을 잃어도 좌절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은 바로 희망 때문이 아닐까? 오잉? 어디선가 ‘희망의 노래(The Song of Hope)’가 흘러나온다.

아니다! 그것은 ‘희망의 노래’를 빙자한 ‘건전가요’였다. 전시장 벽면에 설치된 아홉 개의 스피커에서 KBS 합창단의 ‘새마을노래’가 흘러나온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새마을노래’는 박정희 작사 작곡이다.
이창훈의 ‘낙원 II’(2016)는 KBS 합창단의 ‘새마을노래’부터 정수라의 ‘아 대한민국’에 이르는 건전가요 아홉 곡을 스피커로 통해 흘러나오게 했다. 와이? 왜 그는 시대착오적이게도 전시장에 ‘건전가요’를 틀어놓은 것일까?
물론 아홉 개의 건전가요들은 온전하게 들을 수 있는 것도 아닌가. 어느 건전가요는 불규칙적으로 흘러나오는가 하면, 어떤 때는 건전가요들이 동시다발적으로 흘러나온다. 따라서 온전한 의미전달을 방해한다.
더욱이 건전가요들은 일종의 ‘소음’으로 들리기도 한다. 와이? 왜 이창훈은 ‘건전가요’를 ‘소음’으로 만든 것일까?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건전가요’는 제4공화국 시절 음악통제정책의 일환으로 정부 주도하에 시행되었다.
따라서 당시 발매되는 모든 앨범에는 국가 체제를 옹호하고 국가 구성원의 단결을 도모하는 내용을 담은 ‘건전가요’가 필수적으로 삽입되어야 했다. 그렇다면 ‘건전가요’야말로 ‘불건전’한 소음이 아닌가?
‘소음’이 흘러나오는 아홉 개의 스피커는 묘하게 설치되어 있다. 왼쪽 스피커 3개는 옆으로 나란히 설치되어 있고, 오른쪽 스피커 5개는 마치 점자처럼 보인다. 그렇다! 아홉 개의 스피커는 점자로 설치되었다. 그 점자는 ‘낙원’을 뜻한다.
그런데 점자는 촉각적인 언어가 아닌가? 따라서 이창훈은 촉각적인 언어인 점자를 시각적인 언어로 전이시킨 것이다. 하지만 당신이 점자를 모르면, 그 시각적인 언어(점자)는 무의미할 뿐이다.
만약 내가 바라보는 있는 것이 ‘낙원’이지만, 내가 그 ‘낙원’을 ‘낙원’으로 인지하지 못한다면, 그 ‘낙원’은 ‘낙원’이 아닌 것이란 말인가? 난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전시장을 벗어나려는 순간 출구 쪽 벽면에 설치된 달력을 만난다.
그것은 종교화가 인쇄된 달력이었다. 달력 하단에는 ‘천주교 아현동 성당’이라고 인쇄되어 있다. 그런데 달력에 낙서가 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1월 11일자를 보면 ‘06:00 정화조’라고 연필로 적혀있다.
오잉? 그 달력 밑의 벽면에는 “자유롭게 넘기며 감상하세요”라는 문구가 시트지로 부착되어 있다. 그래서 난 달력을 넘겨보았다. 헉!!! 이 달력은 2018년이 아니라 각기 다른 달력들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머시라? 무슨 뜻이냐구요? 이를테면 1월 달력이 ‘천주교 아현동 성당’에서 제작한 것이라면, 2월 달력은 농협에서 제작한 것이라고 말이다. 그리고 각 월마다 년도도 각기 다르다. 말하자면 2월은 2016년이고, 3월은 2015년이라고 말이다.

그렇다! 이창훈의 달력은 어느 집이나 사무실의 벽면에 걸어진 달력들을 촬영한 것이다. 따라서 그 달력의 배경(벽면)도 함께 나타난다. 이를테면 이창훈은 어느 집이나 사무실 벽면에 걸어진 달력들을 배경과 함께 촬영한 사진들을 인쇄(옵셋 프린트)하여 달력으로 제작했다고 말이다.
그 달력 작업을 이창훈은 ‘원을 베어버린 사선’으로 명명했다. 그러고 보니 그는 이미 2016년에 ‘달력, 원을 베어버린 사선’이란 제목으로 실제 달력 크기로 제작한 작업을 했었다. 당시 그는 재개발 지역의 폐허 같은 곳에서 수집된 달력들을 촬영하여 인쇄(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했다.
물론 그때는 12개월을 달력을 낱개로 제작하여 전시했었다. 하지만 이번 아트센터 화이트 블럭 전시에는 마치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달력처럼 12개월을 한 묶음으로 제직해 놓았다. 따라서 관객이 세심하게 보지 않는다면 이창훈의 달력을 실제의 달력으로 착각할 수 있다.
지나가면서 중얼거렸듯이 이창훈의 ‘달력’에는 그 달력을 사용했던 이들의 흔적(메모)가 남아있다. 따라서 그의 달력은 ‘시간의 재구성’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것을 그는 ‘원을 베어버린 사선’으로 명명했다.
원을 베어버린 사선? 그것은 각기 다른 시간대에 각기 다른 이들의 사연들을 품은 달력들로 구성된 것이란 점에서 미셀 세르(M. Serres)의 목소리를 빌려 말하자면 ‘구겨진 시간들’이라고 할 수 있겠다.
뭬야? ‘구겨진 시간들’이 무엇을 뜻하느냐고요? 만약 당신이 종이에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점을 찍고 그 점들을 이은 선을 그은 종이를 구겨서 미셀 세르의 주머니에 넣으면,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시간과 공간은 어떻게 나타날까?
그렇다! 당신이 답변하고자 했듯이 그 시간과 공간은 중첩될 것이다. 그렇다면 사공간은 구겨진 것이 아닌가? 머시라? 사례를 들어달라고요? 조타! 흔히들 ‘시간은 흘러(지나)간다’고 말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간다’는 것은 하나의 가설이다.
왜냐하면 시간이 지속적이라는 것은 선적인 가설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다른 시간은 열려진 다양한 시간인 셈이다. 만약 당신이 그 다양한 시간을 동시에 떠 올린다면, 당신은 그 시간을 혼돈된 것으로 간주할 것이다.
나는 한국에 있다가 독일로 옮겨가는 공간적 여행을 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난 아인슈타인이 되었다가 추사가 되는 시간적 여행도 할 수 있다. 따라서 선적인 시간으로 멀리 떨어져 있다고 생각한 것이 바로 뒤에 혹은 앞에 혹은 옆에 있을 수도 있다. 따라서 시간과 공간은 ‘거리/흐름’이 아니라 겹쳐져 있는 셈이다. 그쵸?
‘구라’가 넘 길어졌다. 난 2층으로 올라가 김건일과 윤정선 그리고 서정배의 개인전들을 보았다. 난 작년 6월 갤러리 소소에서 열렸던 윤정선의 개인전 <스치는 담>과 갤러리 도올의 서정배 개인전 그리고 작년 8월 아트팩토리에서 개최되었던 김건일의 개인전 <숲에서 헤매다>에 관해 간략하게나마 이곳에 포스팅 했다.
그들은 지난 1년 동안 스튜디오 화이트 블럭에서 작업한 신작들을 이번 아트센터 화이트 블럭 전시에 선보였다. 그들의 신작들은 이전 작품들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한 작품들이었다. 하지만 난 다른 기회를 통해 그들의 신작들을 언급하기로 하겠다.
아트센터 화이트 블럭의 <스튜디오 화이트 블럭 제4기 입주작가전>은 10월 14일까지 전시된다. 강추한다!

류병학 (미술평론가, 독립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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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roject /
한강_예술로 멈춰. 흐르다,
Hangang_Art in the Flow

한강예술공원 Hangang Art Park
2018_0825 –
주최 / 서울특별시 한강사업본부
주관 / 한강예술공원 사업추진단
기획 / 한강예술공원 사업추진단_백유미
수행성 프로그램 기획 / 민병직 (한강예술공원 전문위원, 초청 큐레이터)

아티스트 그룹 언사이트(UNSITE)는 일상의 시공간에 대한 연구와 담론 생산을 추구하는 프로젝트 그룹으로 이번에는 한강의 장소와 비장소성을 연결하는 이색적이고 즉흥적인 퍼포먼스를 수행한다. 중장비인 카고 크레인과 직접 특별하게 제작한 대형 낚시 바늘, 그리고 여기에 매달린 수중 카메라를 활용한 이색적인 낚시 퍼포먼스로 보이지 않는 한강의 이면을 탐색, 기록하여 이를 개발 진행 중인 현재의 한강 풍경들과 연결시킨다. 비가시적인 상상력으로 가득 찬 한강의 비장소성을 현재의 장소성과 기발하면서도 묘한 비유의 방식으로 서로 관계 짓는 것이다. 이러한 행위는 또한, 거대한 낚시 퍼포먼스가 의미하는 것처럼 한강에서 일상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즐거운 여가, 스포츠, 레저 활동이기도 하며, 낙시(樂時), 곧 시간을 낚으며 유희하는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아울러 세상의 이면을 발굴하는 고고학자들처럼 진지하지만 동시에 엉뚱하고 유쾌 발랄한 퍼포먼스이기도 할 것이다. 일상을 낯설게 사유하게 하는 퍼포먼스 특유의 재기 발랄함과 유쾌함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 UNSITE는 신형섭, 이원호, 이창훈으로 구성된 아티스트 프로젝트 그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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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eminar /
토탈미술관 월요살롱
Total Museum Monday Salon

매주 월요일 오후 세 시. 토탈미술관에서는 월요살롱을 진행합니다.

월요살롱은 작가와 큐레이터, 전문가들이 모여
작가 및 작업, 예술계에 대해 가벼이 얘기를 나누는 자리로,
누구든지 참여 가능한 오픈된 자리입니다.
오셔서 자신의 작업을 풀어낼 수도,
또한 작가와 큐레이터의 (좀 더 사적인) 얘기들을 들을 수도 있습니다.

Review_이창훈 작가, 질문들_장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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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ward /

iF 디자인 어워드 2018 대상, 뮌헨, 독일 (iF Design Award 2018 Gold, Munich, Germany)
K-디자인 어워드 2017 브론즈 (K-Design Award 2017 Bronze, Seoul, Korea)

건축공방+김준+이창훈_삶의 환영, welcome 그리고 illusion_북아현동 1-914_2016
ArchiWorkshop+Kim Joon+Lee Changhoon_Welcome of Life / Illusion of Life_1-914, Bugahyeon-dong, Seoul_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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