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ctile Perspective

Tactile Perspective

촉각적 원근법 Tactile Perspective
서울거리예술창작센터 Seoul Street Arts Creation Center
2017_1028 – 2017_1105
후원 / 서울문화재단_서울거리예술창작센터

강우영_권자연_권혜원_김준_무늬만커뮤니티_박윤주_신제현_지승열_진나래_해미 클레멘세비츠

기획 / 아티스트 프로젝트 그룹 UNSITE(이원호_이창훈_신형섭)

촉각적 원근법-조작된 감각과 존재 인식의 자유의지

원근법(Perspective, 遠近法)은 3차원의 공간을 2차원의 평면에 옮기기 위해 사용된 투시법이자 기하학적 체계이기도 하다. 우리가 체험하는 공간 안에 존재하는 물체는 차원이 3개 존재하는데 이것을 2개의 차원만으로 이루어진 평면으로 옮겨야 할 때 어떠한 조작을 필요로 하게 된다. 우리는 그것을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 원근법을 사용해왔던 것인데, 이것은 르네상스 시대에 체계화된 후 회화에서 사용되었고 회화의 재현에 있어 하나의 독점적 시각 체계로 기능하며 우리가 사물을 바라보고 묘사하는 단계에 있어 절대적인 권위로 작동했다. 다시 말해 우리는 ‘원근법적 시각’이라는 구조를 통해 이 세상을 평면에 옮겨 회화적으로 묘사한 것이다.
그렇다면 역으로 생각해 보았을 때, 여기 지금 내가 바라보고, 원근법을 적용해 평면에 재현한 그 사물은 실제로 내가 가지고 있는 두 눈을 통해 바라본 세상 속의 사물과는 무언가 다를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이 말을 다시 생각해보면 우리가 사물을 인식할 때 그것이 몇 개의 차원에 위치하는가, 또 그것이 어떠한 맥락에 위치하는가에 따라 그 사물은 다르게 해석 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사물은 고정 불변한 것이 아니라 그것이 어떠한 형식과 만나느냐, 또는 어떤 외부적 환경에 놓여있냐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에서 증명하려고 했던 절대성과 상대성, 그리고 근대의 휴머니즘적 인식체계 속에서 존재하는 주체와 타자의 시선은 모두 이러한 맥락 안에서 존재했고 우리가 존재에 대해 그리고 진리에 대해 탐구하는 하나의 프레임으로 작동했다.
얼마 전 TV에서 김대식 뇌과학자가 출현한 것을 본 적이 있다. 그는 우리가 맞이하기 시작한 인공지능 시대와 가상현실 세계를 해석하기 위해 장자의 호접몽을 인용하며 실제, 현실, 그리고 나의 존재에 대해 설명하고자 했다. 장자가 꿈속에서 나비로 변했는데 내가 나인지, 나비가 나인지를 알 수 없었고, 꿈에서 깨어난 장자는 진짜 나는 누구인지, 내가 꿈에서 나비가 된 것인지, 아니면 나비가 현실에서 나로 살고 있는지를 알 수 없었다고 한 대목을 통해 그는 “그렇다면 우리가 바라보고 있는 세상과 진짜 세상이 같다고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우리는 대체로 ‘현실’과 ‘가상’, 그리고 ‘나’와 ‘나 아닌 것들’을 분리하는 방식으로 사유한다. 그리고 그 사유 방식은 마치 원근법을 통해 우리가 지정한 사물을 2차원에 표현하고 더 이상의 다른 차원이 존재할 수 없도록 차원의 문을 닫아 의미를 고정시키는 것과 닮아있다. 세상을 보는 나름의 형식을 정하고 나면 그 사물은 그것에 맞춰진 의미를 갖게 되고 또 다른 ‘비고정’ 가능성과 해석 가능성은 의심받지 않게 된다.
하지만 과거, 지구와 우주의 관계에서 코페르니쿠스적 혁명이 있었던 것처럼 미술에서는 과학 기술의 발달과 매체의 확장을 통해 새로운 혁명을 맞이하였다.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 1892~1940)은 1936년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이라는 글을 통해 사진으로 인해 작품의 아우라가 붕괴되었고, 기존 회화의 독보적 권위가 사라지는 현상에 대해 설명하며, 기술의 발전으로 대변되는 현상들이 예술에 어떠한 변화를 야기 시켰는지 설명했다. 그리고 실제 미술사의 흐름에서 보면 모더니즘의 미술은 재현을 위한 회화에서 탈피하여 회화만이 가질 수 있는 특징을 찾으려 했다. 그래서 나타난 것이 모더니즘에서 추구했던 회화의 평면성이자 원근법의 파괴였다.
그렇다면 지금 2017년의 미술로 대변되는 ‘시각예술’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동시대 시각예술의 특징을 크게 살펴보자면 아무래도 매체가 더욱 더 다양화 되어 나타났다는 점, 디지털 기술의 발전, 예술의 탈경계 현상, 그리고 체험을 통해 지각되는 감각의 변화 등을 이야기 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이러한 예술 환경의 변화 속에서 우리가 궁극적으로 탐구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일까? 아무래도 그것은 아직도 여전히 존재하는 물음인, ‘진리’의 세상이 무엇이고 그 속에 존재하는 ‘나’란 무엇인가에 대한 탐구가 아닐까싶다. 얼마 전 한 전시에서 레이몽 드파르동(Raymond Depardon)과 클로딘 누가레(Claudine Nougaret)가 2011년 함께 만든 「수학의 축복」이라는 비디오 작품을 감상했었다. 이 영상 작품에서는 수학자들이 여러명 등장했고, 각자 본인들이 ‘수학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하는 바를 인터뷰 형식으로 이야기했다. 그들은 수학이 단순히 계산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바라보고 있는 세계의 어떤 면을 수학만의 아름다움을 통해 세상 속에서 표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어쩌면 그 수학자들이 말하는 ‘수학’이라는 단어 대신 ‘예술’ 또는 ‘미술’이라는 단어를 대입해도 아마 그 대답이 비슷하지 않았을까 싶다. 우리는 추상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세계를 느끼거나 표현할 때 단지 예술로 허용될 수 있는 하나의 도구를 통할 뿐 본질은 수학자들이 수학을 통해 탐구하려는 ‘세상’ 그리고 그 세계 속에 존재하는 ‘나’라는 대상과 같기 때문이다.
이번 『촉각적 원근법』전시에 참여한 작가들은 모두 같은 공간에서 다른 방식으로 사유하고, 그 사유의 틀로 기능하는 감각을 각자가 자유롭게 선택하였다. 모두 ‘원근법’이라는, 지금까지의 미술에서 허용된 ‘하나의 도구’라는 대명사 안에서 머물러 있다. 하지만 작가들은 여기서 한 걸음 나아가 ‘시각성’으로 대표되었던 기존의 미술의 맥락을 탈피하여, ‘촉각’적 원근법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각자가 바라보고 인식하는 세상에 대해, 각자가 세상을 설명하는 자신만의 방법들을 제시한다. 즉 원근법이라는 단어를 통해 우리를 ‘미술’의 테두리 안에 존재하게 하지만 동시에 ‘촉각’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며 작가가 그 미술을 다루는 하나의 방법론적 자유의지를 보여준다. 이를 통해 ‘사유를 통한 물질’과 ‘물질을 통해 사유되는 방식’을 동시에 볼 수 있다.
과연 그들은 진실을 보았을까? 아니면 진실이 존재 할 수는 있는 것일까? 내가 느낀 시간은 무엇이고, 지금 들리고 만져지는 것들이 과연 이 공간에 실제로 존재하는 것인가?
이번 『촉각적 원근법』전시에 참여한 10명의 작가는 현재 운행을 멈춘 ‘구의취수장’의 ‘관사’ 공간을 방문하고 그 공간을 통한 다양한 감각의 작용을 동원하여 예술로 표현해 보았다.
서울시 광진구 아차산로 710에 위치한 구의취수장은 도시화로 인하여 인구가 증가하자 1976년 건설되어 취수 수요를 담당했다. 그 후 2010년까지 운행되다가 지금은 1970년대 산업건축물의 발전을 상징하는 유산으로 보존되고 있다. 2017년 현재, 과거의 건물의 원형은 그대로 보존되었지만, 2012년 12월부터 이 공간이 문화예술공간으로 재탄생되기 위해 연습실, 예술관, 작업실, 교육실, 주차장 등을 리모델링하였다. 그리고 현재 취수장은 서울문화재단 거리예술창작센터로 사용되고 있고, 2018년에는 건물이 새단장을 하고 예술 레지던시 시설로 재탄생할 예정이다.
이곳이 취수장으로 운영되었을 때 시설 관리를 하던 사람들이 살던 ‘관사’ 건물 안에는 10가구가 있었다. 참여 작가들은 그 중 7가구가 살던 공간을 현재모습과 과거의 흔적들을 바탕으로 시각, 청각, 촉각, 후각을 동원하여 예술로 체험해 본다.

해미 클레멘세비츠_D.E.A.F(레.미.라.파)_스피커, 쓰레기, 전구, 스피커 통, 앰프, 사운드_가변설치_2017

해미 클레멘세비츠(Rémi Klemensiewicz)는 ‘소리’라는 개념을 시각화 시킨다. 소리는 본디 청각적 작용을 통해서 감지할 수 있다. 하지만 소리를 대표하는 사물인 스피커의 청각성이 소거되면서, 공간 안에서 관객들은 사물과 소리를 시각과 청각의 구조적인 관계로 변환한다. 이를 통해 시각과 청각이라는 ‘개념’으로 존재하는 시각성과 청각성을 체험해 볼 수 있다.

강우영_White out_나프탈렌_가변설치_2017

강우영은 나프탈렌 가루로 새 벽지를 바르듯 벽지 위에 하얗게 무늬를 쌓는다. 그렇게 만들어진 공간의 시층(時層)은 두터워지고 강렬한 나프탈렌의 냄새는 과거와 현재의 원근을 지워버린다. 이렇게 멈춰진 듯한 공간은 후각을 자극하여 공간 속 시간을 새롭게 흐르게 하고 새로운 시간의 두께를 만들어낸다.

권자연_광장동 18-2_종이, 디지털 프린트, 색연필_44×59cm_2017

권자연은 사람들이 일상을 보냈던 공간에는 그들의 이야기가 스며들어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흔적의 잔재를 모두 합하여 탁본을 제작하여 책으로 묶는 작업을 하게 된다. 시간의 흔적을 보고 페이지를 넘기며 시간을 느낀다. 그리고 그 넘어가는 시간은 우리에게 얇고 만지면 바스락거리는 종이의 소리로 전해진다.

권혜원_염소의 맛 A Taste of Chlorine_영상설치_2017

권혜원은 한강에서 수집된 강물을 병에 담아 모터의 진동과 조명을 통해 물그림자와 움직임을 만들어낸다. 물은 자연에서 오는 것이지만 사람들에게 공급되는 도시의 물은 살균과 공급 등 도시의 상수도 시스템을 통해 여러 가지 단계를 걸쳐 만들어진다. 이러한 과정을 함축적으로 담아 물의 존재와 움직임을 표현한다.

김준_플리센_스피커, 앰프, LED, 2채널 사운드_가변설치_2017

김준은 사운드 설치를 통해 청각과 시각적 방법을 동원해 물의 근원을 파헤치고자 했다. 이는 물의 생명력을 맥박 소리에 비유하여, 관사 옥탑에 설치된 버려진 물탱크에 다시금 생명을 불어넣는 행위라 볼 수 있다. 그리고 이 맥박 소리는 물의 생명을 다시 탄생시켜 한 때 서울 시민의 물공급을 담당하던 취수장의 그 시절의 모습을 떠오르게 한다.

무늬만커뮤니티_기억의 촉각_지우개, 종이_2017

무늬만커뮤니티는 먼지와 폐기물을 통해 시간의 오랜 멈춤을 체감했다. 그리고 쌓여있는 먼지를 사용하여 텍스트를 만들어 보고자 한다. 이 먼지로 만들어진 텍스트는 우리의 시각기능을 통해 인식되고 켜켜이 쌓여있는 먼지가 촉각성을 자극한다. 촉각적 ‘의미’로 재탄생한 먼지가 예전에 이 공간이 제 기능을 하고 있었을 과거로 우리를 되돌린다.

박윤주_샤워론_파포먼스 설치, 단채널 영상_00:05:22_2017

박윤주는 4차원의 시간성을 가진 매체인 비디오 작업을 통해 3차원의 공간 안의 물의 흐름과 물소리를 보여준다. 영상과 함께 들리는 나레이션과 샤워를 하는 사람이 보이는 영상은 그의 피부에 닿아 미끄러지는 물줄기가 영상을 보는 우리의 촉각을 자극하고, 시원하게 내리 붓는 물의 움직임과 물소리의 연상 작용은 우리의 시각과 청각 작용을 발생시킨다.

신제현_지금-2017. 10. X / Now-Oct. X, 2017_솔레로이드 모터, 저속모터, 제어장치_2017

신제현은 흰 공간 안에 퍼지는 냄새를 통해 후각을 통한 시각화를 의도한다. 가끔 냄새를 통해 우리의 잊혀진 기억이 다시 살아나기도 한다. 어떤 냄새는 오래된 책을 연상하게 할 것이고 또는 오래된 하수도, 지하실을 떠오르게 할 수도 있다. 이를 통해 관객은 시각적 흔적을 하얗게 지워버릴 수 있고, 솔레로이드 모터와 아듀이노를 이용하여 퍼지는 냄새를 통해 우리는 전혀 다른 공간에 와 있는 듯 한 느낌을 받게 된다.

지승열_촉감과 내뿜음_HAPTIC & BLOW in VR_2017

지승열은 가상현실(VR) 기술을 활용하여 지금 현재 공간에서 느껴지는 것들과 가상의 공간에서 작용하는 현상들의 겹침을 표현한다. 관람객은 VR장비와 의류를 활용하여 전시 공간과 유사한 또 하나의 가상공간에 위치하게 된다. 현재 내가 존재하고 있는 공간 안에서 나의 위치를 파악하는 모션 캡쳐 기능을 통해, 공간 안의 특정 지점에 도착한 내가 입으로 입김을 불어 민들레꽃의 씨앗이 흩어지게 할 수 있고 그것을 가상현실 속에서 보고 만지는 체험을 할 수 있다.

진나래_나투라 나투란스-흙은 물 속으로, 물은 불 속으로_가변설치_2017

진나래는 인간이 자연과 맺는 관계를 통해, 기존에 우리가 생각하던 ‘자연’과 ‘인공’이라는 개념에 의문을 제기한다. 각 가정에 있을법한 도구들은 함께 인공적 요소들과 집의 요소들이 어우러지는 공간을 만들어내고, 물이라는 자연과 물이 거치는 취수장은 자연과 인공자연을 형성한다. 생물 감시 장치를 통해 어류들의 어종을 감시하는 뉴스가 담긴 영상을 통해, 자연과 인간 사이에 존재하는 ‘원근’, 즉 ‘거리’를 재설정하고 우리 인간과 자연의 거리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기회를 제공한다.

김주옥